15.8.15

영화 '암살' 속 실존인물을 찾아서..



 

초반에 김구가 결혼식에 못가서 미안하네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1945년에 김원봉이 재혼할때는 김구가 주례를 서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윤봉길 의사의 사진..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를 모르는 분들은 없겠죠?


김원봉은 해방이후에 북한쪽으로 넘어가고
김구는 남한쪽에 있어서 나중에 둘의 노선이 달라지는걸 알기에
영화상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모습이 더 아련하게 보이네요


**​약산 김원봉은 그때당시 100만원,
지금으로는 320억이 걸릴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는데요
1930년대에는 중국군과 함께 조선 의용대를 창설해서 일제와 맞서 싸웁니다.
그런데!!!!!오히려 광복이 되고 나서 1947년 친일파경찰인 노덕술한테 정치활동중 잡혀들어가
뺨맞고 고문당하는 치욕적인 일을 당해서 술마시고 사흘내내 울었다는 일화가 있네요 ㅠ이게 다 친일파 청산이 안되서 ㅠㅠㅠ


중국에서는 김원봉을 김구와 동급으로 칠 정도였는데 월북한 사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쉽기두 하구요
실제 김원봉은 한국전쟁도 반대하고 하나된 자주독립국을 완성해야한다고 북한에서도 소신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셨지만,한국전쟁중에 빨갱이의 가족으로 몰려 김원봉의 가족이 살해되었던 사실 ㅠ

일찍히 최동훈 감독은 염석진이란 캐릭터를 미육군문서에 의거, 독립운동 중 붙잡혀 밀정이 된 염동진을 모티브로 했다고해요. 그런데 이것으로는 그가 고위 경찰로 활동하는 씬을 설명할 수가 없죠. 염석진 실존인물 염동진은 백의사를 조직했기에..


그런데 노덕술이란 인물에서 해답이 나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당시 고등계 형사로서 친일 경찰로 알려져 있구요. 많은 독립운동가 체포하고 고문했으며, 반민특위 해체이후에도 복귀하여 호사를 누렸습니다. 심지어 1960년엔 국회의원 선거도 출마했엇지.. 제 기억이 맞다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몇 번 나온적이 있습니다.
이 둘을 융합, 착안하여 만들어낸 허구 캐릭터가 염석진이 아닐까 싶네요.


그 중 전지연이 맡은 안옥윤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전지연을 위한 영화라는 말이 돌 정도로 멋진 주인공으로 나오는 안윤옥은 실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장부인 남자현을 바탕으로 그려낸 인물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
애국지사묘역 41에 묻혀계신 남자현 의사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실제로 남자현(南慈賢·1873~1933)은 대한 독립운동에 몸소 나선 여전사로 1927년 조선총독을 주살하고자 했던 여성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의사, 열사, 지사를 구별하는데요.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처럼 뒤에 ‘의사’가 붙는 분들은 무기를 들고 무장독립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유관순 열사처럼 뒤에 ‘열사’가 붙는 분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죠. 지사는 의사, 열사처럼 나라를 위한 굳은 의자와 뜻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의사, 열사와 달리 순국 후가 아니라 생존 시에도 붙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남자현 선생은 ‘의사’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데요.여성임에도 무장독립운동에 나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걸입니다.
 

사대부의 여인이 독립운동가로
경북 영양군의 양반의 집에서 태어난 남자현은 어려서부터 무척 총명하여 일곱 살에 한글은 물론 한자까지 읽고 쓸 줄 알았다고 합니다. 12세 때는 소학과 대학을 읽었고, 14세에는 사서를 독파하고 시를 지었다 전해질 정도합니다. 남자현은 19세 때 아버지가 정해준 아버지 제자인 안동 유학자 집안의 김영주(金永周)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남자현의 아버지 남정한과 그의 제자 그리고 그녀의 남편까지 의병운동에 동참합니다. 결혼하고 5년만, 남자현의 나이 24에 흥구동 전투에서 남편이 전사하고 맙니다. 당시 임신 중인 그녀는 유복자가 그 집안의 3대독자인 김성삼(金星三)을 낳고 홀로 아이를 키웁니다. 하지만 남편과 아버지의 뜻을 이어 3.1운동이 있던 1919년 서울로 올라가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3.1운동 가담은 물론 그 후 만주로 건나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교육활동과 계몽운동, 독립군 운영을 위한 자금 모집, 투옥된 지도자를 위한 옥바라지, 독립군 단결을 위한 노력 등 그녀가 한 일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영화 초반에 금광? 광산? 채굴권을 얻기위해 금명함을 내미는 강인국의 모습이 나오죠


반민특위 검거대상 1호이자 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이나


전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 등
금광채굴을 하며 친일을 한 사람이 하도 많아서;;ㅜ
한 명을 꼽기가 어렵지만 신문이나 백화점 관련한 내용이 제 기억상으론 영화 속에 없었기에-


아마 문명기(1878-1968)가
강인국과 제일 비슷한 인물 같아요
문명기는 생선장수를 할 때부터 일본서장의 집에 자주 생선을 걸어두며 눈에 띄려고 노력했어요
(고등어가 일어로 '사바' 인데 이렇게 일본인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잘 보이려고 한 것이 사바사바의 어원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네요 )

그러다가,1932년에 금광산업에 뛰어든 후에 한마디로 노다지! 가 터진 인물이에요
문명기는 1935년 국방헌금 10만원으로 일본 육군, 해군에 비행기 1대씩을 헌납해서 조선총독부 공보국에서 대대적으로 선전 보도했어요


그 비행기에는'문명기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추정하고 있네요!
영화 암살 중반부쯤에도 강인국이 비행기를 헌납했다는 요지의 홍보영상이 나오죠
그러면서 그는 중추원 참의, 경북도회 의원 등 온갖 감투를 맡기 시작했고
금광에서 발견된 두꺼비 모양의 금덩어리를 천황에게 바치고 아침저녁으로 일본신 부적에 절을 하는 운동을 펼치는 등 헌납병 환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펼쳤어요.
가족들도 창씨개명 후 일어만 사용하게 하고 복식이나 가옥, 생활양식 모두를 일본식에 맞췄다고 하네요.
영화상에서 하정우의 손에 죽는 강인국과는 달리 문명기는 해방 이후 반민특위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고 90세까지 아주아주 잘 살았어요
장손자는 국회의원, 장관도 역임하구요..(..)
강인국-문명기 같은 사람들이 반민특위에서 제대로 재판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이 풀려났을까요
오히려 조상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것에 항의하고 국가에서 재산이나 토지 몰수한 것을 반환해달라고 소송도 하는 후손들도 있으니 마음이 쫌 - 많이 그르네요잉


이상의 작품 '날개'에도 등장하는 미쓰코시 백화점은 1900년대에 처음 한국에 등장한 백화점인데요


1945년 동화백화점,미군정때는 PX로 사용되다가 삼성이 인수 후 현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관으로 변신!

잘 보면 건물 모양이 층수만 다르고 똑같아요!!
6.25를 거치고도 무너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기방기네요-

14.8.15

이것이 일본의 실체

우리 선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일본군의 잔학하고 악랄하고 무자비한 총칼에 쓰러져갔습니다.
일본은 1880년경부터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일본군을 주둔시켜 황후시해 등 갖가지 만행을 자행하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더니 그것도 모자라 지금은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며 점령하려 합니다.
일제강점 36년 동안 자행한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고발합시다.

※끔찍한 사진이 많으니 심장이 약한 분은 주의하세요
 
 
▲독립투사와 양민들이 붙잡혀 온 집결장.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1928년, 이 때부터 일본군은 악랄하고 잔혹한 살육의 강도를 높였다.
▲독립투사, 양민을 학살하기 위해 일본도를 손질하는 일본군.
▲독립투사를 처형장소로 데려가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공개처형장에서 일본인의 칼에 목이 떨어지는 독립투사
일본인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 칼이나 죽창, 나무 등을 이용해 학살했는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목을 베는지 시합도 즐겼다고 한다.


▲일본군들에게 끌려가는 독립군 의병장


▲무기도 빈약하고 의복도 남루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들을 해치워야겠다는 의기투철한 독립군 모습.


▲총검으로 처형하기 위해 담장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군의 총검에는 이미 선혈이 묻어있다.


▲체포된 독립군은 결국 처형을 당했다.
칼로 목을 칠 때 넘어가지 않도록 팔을 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군의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개를 풀어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독립군 간부의 처형 장면. 목을 치기 전 뒷편 일본군의 웃는 모습이 치를 떨게 한다.


▲작두로 독립군의 목을 잘라 공중 높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공포심을 주려고 추운 겨울 날씨를 이용해 오랫동안 매달았다.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최악의 형벌을 자행했다.


▲죽은 시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시켰다.
온 마을이 유해로 가득하고 마치 일본의 원폭 피해처럼 보인다.


▲손을 뒤로 묶고 물에 수장하는 처형.
처형이라기 보다 학살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일본군들은 사정없이 민간인까지 처형했다. 
떨어진 머리를 들고 웃는 모습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사람을 장난삼아 학살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일본인들이 포로가 된 민간인과 독립군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 담장아래에 상품처럼 진열하여 두고 있다.
독립군 투사들은 죽어서도 한결같이 한을 품고 눈을 감았다.


 생매장되고 있는 양민들. 일본인들의 잔혹함을 엿볼수 있다.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선독립을 원했다.


▲일본군 의사 간부가 인간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없이 손을 묶고 해부하고 있다.
복부에서 창자와 내용물이 흘러나오고 일본인들은 입에 마스크를 하고 지켜보고 있다.


▲일본군들이 처형하기 전 목에 수건을 감아놓은 것은
잘린 몸통에서 어져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한 것이다.


▲손을 뒤로 묶고 칼로 살육하는 장면.


하의가 벗겨지고 혹독한 고문당한 후 생을 마감.


 나무 벌목과 혹독한 노역을 당하 난 후 결국 모두 처형되었다.


▲총검으로 처형당하는 모습.
일본군 입가의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장면. 천벌을 받을 놈들이다.


▲일본도로 목을 자르기위해 고개를 세우고 있다.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 처형하는 순간.

칼이 지나가 목이 잘녀나간 순간


▲독립군의 목이 잘려나가는 순간


▲처형 후 두 일본군 병사가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 찰영을 하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양민들. 일본인의 감시 아래 손이 뒤로 묶여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이 파헤쳐 시체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 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처형을 기다리는 소년투사.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잔학 무도한 일본군들이 대량 학살을 하고 난 후의 처참한 광경. 고랑에 즐비한 시체들.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가족들이 시신을 찾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


▲잔혹한 살육 장면(1942)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목은 잘려 있고 얼굴은 등 뒤로 돌려져 있다.


▲욕보인 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한 장면. 엉덩이의 총상 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일본군이 여성의 아래를 가려 좔영하였다. 더 이상 해설이 필요없는 사진이다.


▲조선 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욕보인 후 살해했다.
여성 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들은 항상 여러명의 조선 여성을 끌고 다녔다.


▲수장된 시신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생매장시켰다. 
살기위해 허우적대면 긴 막대기로 물 속에 밀어 넣었다.


▲한 곳에 몰아 넣어 집단으로 무차별 학살한 후 불태웠다.


▲(1937년)허탈한 아버지.
어린 자식의 시신을 물건처럼 들고 있을 만큼 어이없는 학살이였다.


▲여성의 옷을 벗기고 참혹하게 살육한 현장.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
일본군은 1943년 후퇴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자행했다.


▲(1938년)처형 실습 현장. 강변에서 총검으로 살육하는 실습을 자행하고 있다.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동원된 일본군인들이 유심히 보고 있다.


▲두 사람의 양민이 포로가 되어 묶인 채 두 손 모아 애원하고 있고 일본군은 무엇인가 소리치고 있다.


▲산더미 같은 시체.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다.


▲집단 학살. 죄명 아닌 죄명을 가슴에 달고 사살했다.


▲이성 잃은 일본군. 일본군이 여성의 하복부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없는 일이다. 일본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 있다.


▲부녀자 강제로 욕보임. 일본 병사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모습.


▲수장된 시신. 손을 뒤로 묶고 연못에 수장했다.
막대기로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버둥거렸을 지...


▲갓난 아기의 죽음.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아이들의 시체.
일본인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했었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 일본군이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삼아 사격연습을 하고 있다.


▲부녀자 집단 사살. 엄마와 함께 도피하다 참변을 당했다.
흐르는 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 사살 현장. 일본군이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부녀자의 절규. 강압에 의해 하체를...(차마 설명 할수 없음)
손에 실반지가 보인다. 단란했던 가정을 등지고 위안부로 끌려갈 것이다.
여성의 벌어진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다.


▲작두로 처형되기 직전. 곧 작두에 목이 잘려나갈 것이다.


▲작두로 목을 자르고 있다.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작두로 수없이 목이 잘려나간 양민들의 모습. 
일본군이 장난삼아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부분을 가르키게 해놨다.
저런 끔직한 일이 일본군에게는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일본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만여명이 사망했다.
민심의 동요가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조선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해 교포 약 5천명을 학살했다. (몽둥이, 죽창으로 학살)


▲창고에서 독살. 엄청난 수의 시체가 당시의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노역자가 운송을 마치면 죽음이다. 부릴만큼 부리고 쓸모없어지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렇게 죽였다.


◆3명의 의병을 총살한 현장. 영국의 여행가 비숍이 촬영한 것이다.
영국 왕립박물관에 소장된 자료. 서대문 형무소 뒤 야산 공동묘지에서 독립의병 3명이 총살당하는 모습.


▲일본군은 모든 생명을 말살하기로 한 것인가? 어린아이까지 죽여서 불태웠다.


▲독립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 학살된 유해들.
일본의 잔혹한 행위로 죽은 영혼들을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어린이의 목을 베는 일본군. 선량한 양민을 단칼에 처형하는 지구상에는 하나밖에 없는 족속들이다.


▲죽음 앞에서도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짖는 당당한 독립투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진이다.


▲길거리에서 일본군인에게 강간당하고 죽은 여성. 배를 갈라 죽인 듯 내장이 나온 상태다.


▲일본군위안소의 거실 내부. 이곳에서 일본군은 성욕을 채웠다.


▲근심이 가득한 조선 정신대 여성들. 일본군 위문품을 강제에 의해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다.


▲일본군위안부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 병사들.
정신대는 근로부역에 끌려간 조선인들을 이르는 말이고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으로 군대를 따라간 여성을 이르는 말로서 일본이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위해 지어낸 말이다. 일본군위안부가 정확한 명칭이고 UN등 국제기구에서는  ‘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들을 강제로 드러나게 하여 찍은 사진.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막사로 실려가는 일본군위안부.


▲일본군위안부의 휴식시간.

▲일본군 근무지에도 불려간 일본군위안부
▲ 강간당한 후 참혹하게 살해된 여성들.

▲위안부 여성들이 머문 숙소

▲중국과 미얀마 국경 부근에 묻힌 일본군위안부의 시신. 대부분 조선인 여성으로 기록돼 있다.(194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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